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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인간 : 큰글자도서
당분간 인간 : 큰글자도서
- Material Type
- 단행본
- Control Number
- sacl:118384
- 책소개
-
고단한 우리는 모두 ‘당분간’ 인간
그는 그간 세편의 장편소설을 통해 동시대 인간 군상의 꿈과 욕망, 일상의 풍경을 솔직하고 날렵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그려내왔다. 그런 한편으로 지금껏 꾸준하고 성실하게 발표해온 단편들은 작가가 다양한 모색과 변화를 통해 그와는 또다른 매력을 지닌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을 부드러운 솜사탕이나 포근한 솜이불에 비유하는 건 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언 눈 속에서 삽질을 몇번만 해보면 그동안 눈의 낭만적인 표면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얼어붙은 눈은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위험하다. 부딪히거나 긁히기만 해도 바로 피가 맺힌다. 손등에 난 피를 혀로 핥고 나서 남자는 발로 삽을 꾹 눌렀다. (…) 폭설이 이 도시가 아니라 남자의 인생에 쏟아져내린 것 같았다. 팔다리에 힘이 빠질수록 남자는 한마리의 두더지가 되고 싶었다.(「스노우맨」 20~21면)
그의 소설은 우선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스노우맨」은 폭설을 뚫고 출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기록적인 폭설로 온 도시가 파묻혀 집 안에 꼼짝없이 갇힌 재난 상황에서도 남자는 직장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에 떠밀려 출근을 감행한다. 홀로 삽 한 자루를 들고 갖은 애를 쓰며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출근길은 여전히 멀고, 부장은 태연하게 출근을 재촉한다. 남자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책하며 다만 막막한 삽질을 계속한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여자는 비밀리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로봇 도우미’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잠시, 완벽한 능력을 지닌 로봇 도우미에게 밀려 어느새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로봇 뒤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삽의 이력」의 남자는 도시개발의 기초작업이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공터에서 구덩이를 파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구덩이를 파는 족족 다음날이면 말끔히 메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다른 남자 역시 똑같은 이유로 무작정 구덩이를 메우는 업무를 맡고 있었던 것. 하지만 두 남자 모두 각자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무의미한 ‘삽질’을 멈출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된다.
그런가 하면 「당분간 인간」의 주인공은 겨우 구한 새 직장과 이웃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 때문에 점점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고 심지어 부스러지기까지 하는 기이한 증상에 시달린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전임자는 갈수록 몸이 물렁해지는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중이다. 증상을 감추며 버텨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주변의 상황은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다.
이 정도 이야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서유미의 소설에서 전면에 내세워지는 기발한 상상력이 강조하는 것은 실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의 고단함이다. 일과 육아에 치여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출근이란 재앙을 헤치고 살아남는 일과 다를 바 없으며, 생활을 위해 하루하루 반복해야 하는 일은 실은 아무런 의미 없는 삽질과도 같다. 그러니 이 모든 것에 지쳐 온몸이 한없이 물렁해져 퍼져버리거나 굳어서 산산이 부스러진다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그처럼 우리는 모두 인간이지만 ‘당분간’만 겨우 ‘인간’으로 버텨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시적으로만 ‘인간’인 우리의 초상을 설명하기 위해 서유미의 인간학은 ‘당분간’이라는 수식어를 새로 발굴해냈다. 「당분간 인간」을 통해 ‘당분간’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간답게’ 살아가기는 어려운, 아이러니한 삶의 조건을 적확하게 꼬집는 어휘가 되었다.”(신샛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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