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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초인간의 프랙탈Fractal, 『아가미』
구병모, 『아가미』
***스포일러 있음!!!***
2년 전, 벼락치기처럼 입시 준비를 할 때 허겁지겁 읽었던 책이다. 면접 준비를 위한 첫 책으로 고른 것은 실책이었다. 이 한 권을 읽고 흑흑 슬퍼하며 떠다니다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비평에서는 구병모 작가의 소설들을 '삶의 고통에 대한 예방주사'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아무 면역이 없었는지, 하필 면역이 약해져 있던 때였는지 꽤 심하게 앓았다. 소설은 아름답게 빛을 반사하는 유리조각처럼 읽는 사람의 속을 사납게 짓이겨버린다. 꼭 휘몰아치는 물살처럼.
주인공 ‘곤’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게 몸에 아가미가 존재해 물속에서도 호흡할 수 있고, 몸에 아름다운 비늘이 돋아 있는 등 흔히 말하는 ‘인어’의 외양을 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특징은 곤이 태어나면서 가진 것일 수도 있고, 친부와 함께 죽을 뻔 했을 때 기적적으로 ‘진화’하며 얻은 초인간적 능력일 수도 있다. 소설 내에서는 이러한 돌연변이성의 근간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소설 속 세계와 이야기의 폭을 더욱 넓게 확장시킨다. 소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 속 ‘판타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일면 비논리적일 만큼 냉혹한 세상의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뿐이다. 가령 ‘신데렐라는 돈이 없어서 무도회에 가지 못했습니다.’와 같은 식이다. 쥐나 호박, 요정 대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다른 점은 그 신데렐라에게 아름다운 비늘과 아가미가 달려있었다는 것 정도다. 다양한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판타지 소설 속 ‘초인간적’ 주인공들과 다르게, 주인공 ‘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대한 일반적인 ‘인간’처럼 살고자 했다는 점 또한 소설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 속 ‘인간성’과 ‘비인간성’은 기하학적 형태 ‘프랙탈Fractal’처럼 서로 엮여 있다. 프랙탈이란 ‘자기 유사성’을 띄는 기하학적 구조를 일컫는데, 전체 구성의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유사한 형태를 갖는 구조를 의미한다. 위 그림은 기본적인 프랙탈의 일례이다. 정삼각형 셋이 모여서 그보다 큰 형태의 삼각형의 모습을 갖췄다. 여기서 분류를 해보려 한다. 검은 삼각형의 이름은 ‘인간성, 현실성’이다. 가운데 흰 삼각형은 일반적으로 비어있을 수 있는 설정의 공백에 작가가 안배한 ‘비인간성-비현실성-판타지성’이고, 이는 곧 곤의 소설 도구적 본질이다. 지극한 현실로 둘러싸인 비현실적 요소는 무엇보다 소설의 중심에 자리함으로써 소설의 전개와 개연성, 사건의 발발 등에 중요하게 작용하며 결국 다른 배경 등의 요소와 결합해 거대한 삼각형, 소설 『아가미』를 이루어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각 저 흑백의 경계에 각자의 농도에 맞춰 걸쳐져 있다. 중심의 ‘비인간성’이란 비단 곤만의 요소가 아니라는 의미다. 소설 속 인간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춰 치열하게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성을 표출하고 쌓아감과 동시에, 그 끝끝마다, 인간성의 극치마다 도달하게 되는 각자의 비인간성을 정직하게 직접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통해 유추하고 정리할 수 있는 ‘인간성’이란 무엇일까? ‘비인간성’은 무조건 그것의 반대축에 존재하는 것일까? 바깥의 이론이나 학설 같은 것 없이, 오직 이 소설 안에서 찾아낸 인간성이란 대개 못나고, 하찮고 추한 것이되, 인간으로선 쉽게 역행할 수 없는 온기였다. 사랑과 공감의 온기에 몸을 내맡기는 것, 수몰의 위험 속에서 가족을 구하기 위해 1층으로 달려가는 것,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의 죽음을 은폐하는 것, 가족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 하는 것, 용서를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파헤치는 것... 인간들의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성질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설 속의 인간성이었다. 명확한 한계를 띄며 일면 어리석고 폭력적이면서, 모든 일을 다 망쳐버리고 마는 듯한 절망감을 선사하면서도, 읽는 이가 그것의 불가역성을 공감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나라면 다른 생각-행동-말을 했을 거야.’라고 아주 쉽고 가볍게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굉장히 인간적인 모든 것들. 작가는 각각의 인물들을 철저히 설계하고 촘촘히 배치해둠으로써 인간성이라는 법칙 속의 비극들을 조금의 허술함도 없게 표현해낸다.
소설 속 ‘비인간성’ 또한 ‘이러한 것들이 이러하지 않은 것’에 머물지 않는다. 비인간성이 홀로 뚝 떨어져 있는 채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비인간성은 앞서 말한 것들의 극한마다 점점이 존재한다.
“그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와 “그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갔다.”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이 중의 ‘죽음을 불사하고’가 이 소설 안에서 관측되는 비인간성이다. 인간성이 온기를 추구하고 갈구하는 움직임이라면, 비인간성은 온기를 잊어버리고, 혹은 염두하지도 않고 ‘새하얀 머릿속’인 채 달리게 만드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마약에 취한 머릿속, 위기 때문에 패닉에 빠진 머릿속, 모든 비극을 마주하고도 미미하게 웃는 얼굴, 끝없이 시체를 찾고자 물속으로 돌아가는 마음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네 개의 삼각형이 모인 삼각형을 아주 먼 곳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색이 번져 검은색으로 보일까, 회색으로 보일까? 그 삼각형은 ‘비非’의 성질을 가졌는데도 인간성을 띄고, 현실적인 요소가 잘 쌓여 있음에도 가운데가 흰색으로 뚫려 있다. 우린 이것을 소설 『아가미』로도 볼 수 있지만, 나는 이것을 ‘인간’이라 부른다.
계절을 타지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빨리 읽으면 빨리 읽을수록 좋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예방주사 맞고 가세요. 좀, 꽤 많이 따끔, 욱신, 찌르르 할 수 있지만 건강에 이상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