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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오모니', '언니야', 그리고 '가즈야'
모리사키 가즈에,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가즈야'는 작중 작가의 집의 식모 '언니야'가 작가를 부르던 애칭이다. '가즈에'의 '가즈'와 '~야'라는 부름을 붙인 듯 하다.)
시대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
‘코로나’라는 단어가 맥주, 태양의 플라즈마로나 종종 불리는 세상에서 덥썩덥썩 붙어사는 사람들. 나눠 마시고 나눠먹고 아무렇지 않게 기침하고, 그 기침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사람들.
비로소 풀려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토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과 군중-단체의 일부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과감히 개인을 들여다보지 않던 사람들.
‘전쟁’은 피난, 학살, 죽음과 핍박, 같은 말을 쓰는 사람끼리의 총질.
‘일제강점기’는 다른 말의 침투, ‘타他’로부터 짓눌리는 감각, 울타리에 가두어져 걷는 흐름조차 통제당하는 우마牛馬와 같은 참담함, ‘かちく’의 모멸감, 기저에 끓던 분노 같은 것들.
그러나 시대는 이어지고 세상은 방대하며 시간은 잠깐이 없다. 이미지 몇 가지로 역사를 압축하기란 어리석으면서 불가능한 일이다.
덩어리진 이미지들의 ‘사이’ 속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이 책 또한 ‘사이’의 누군가를 엿볼 수 있는 창이다. 흑, 백, 흑, 백 따위로 이어지지 않는 역사 속에서 이 색에 가깝기도, 저 색에 가깝기도 한 얇은 틈새의 사람이 자신이 존재했음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 속엔, 마찬가지로 ‘사이’의 ‘우리’가 간간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이다.
교사였던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여동생과 남동생을 두었으며 그들 딴엔 ‘가난하다’, ‘검소하다’하는 생활을 이어왔으나 조선인 입장에서 보면 복에 겨운 헛소리로 들릴 만큼의 형편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내내 대개 반성적인 태도로 국가와 본인들을 비판하나 그럼에도 쉽게 풀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어찌 되었건 전범의 혜택을 모두 누린 ‘뒤’에 모든 게 쓰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작가의 희망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과 시대, 국가가 구성한 것이라지만 당시 조선인들의 실상을 아는 만큼 머릿속에선 자꾸 불꽃이 튄다.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내분된 자아의 충돌이다. 부싯돌처럼 딱, 딱,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한없이 낭만적인 작가의 어린시절, 그 세세한 풍경과 향수를 냉소적으로 보는 마음과 그의 편을 들진 않더라도 이 반성과 그리움의 글을 쓴 사람을 차마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뒤엉킨다.
이 책은 수기이다. 오직 자신의 이야기, 어린시절 보았던 것들, 겪었던 것들, 떠올렸던 생각들과 그를 지나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의 조선을, 조선 안에 살던 사람들을 엿보기에 더 없이 좋은 글이지만 아무래도 2024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파수와 조금씩 엇나가는 부분들은 존재한다. 나는 이 책을 재한 일본인에 대한 정보를 찾다 알게 되었다.
‘일본인’인 그들은 식민지 조선에선 당연히 배척받는 존재다. 점령국의 국민이면서 문화는 물론 말조차 통하지 않는 침략자들이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이 ‘본토’, 일본 ‘내지’(책 안에 등장하는 당시의 표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당시의 재일 일본인과 재한 일본인의 생활환경, 여건, 문화 같은 것들의 격차가 꽤 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이야기를 다룬 짧은 글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조선 출신 일본인들은 일본의 문화와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했다. 조선에 향수를 느끼며 슬퍼하는 일본인,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지나 패전국 국민으로서 귀국한 인물들이라니. 그런 인물상은 내 안의 시대 이미지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사람 사는 세상’. 그러나 건너건너 들은 끔찍한 참살의 이야기도 모두 사람의 이야기이고, 작가가 겪은 안전한 위치에서의 온정들도 모두 사람의 이야기고, 첨예한 대립과 투쟁의 빈틈을 메운 미적지근한 ‘사는 사람들’ 또한 모두 사람이다. 세상엔 양분되는 게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단순히 이분으로 끝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이었기에 겪고 말할 수 있는 장면들일지도 모른다.
서너 살 무렵의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에 탄 조선인 아주머니가 어린 작가를 보며 반색한다. 조선말로 뭐라 이야기를 하지만 작가와 어머니는 알지 못한다. 아주머니는 부푼 흰색 치마를 훌쩍 걷어 올리고, 그 안 허리춤에 매어둔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낸다. ‘용돈’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낯선 작가는 어머니에게 매달리고 어머니는 연신 ‘오모니, 됐어요.’하며 사절한다.
인물의 ‘설정’을 지운다면 익숙한 광경이다. 어린 아이를 보고 용돈을 주는 어른과 그걸 말리는 보호자. 그런데 이 시기는 1930년대. 해방까진 10년도 넘게 남았으며 침탈, 침식이 한창 이루어지던 시대다. 내가 관습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시대의 장면들과 실제 경험자의 증언(추억)이 충돌한다. 무너지는 것은 이쪽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매일, 매순간, 전국 곳곳이 끝없는 투쟁으로 피 흘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 속에서-그들을 통해-그들을 위해, 움직이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인 중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을 인지하는 순간 적당히 편하게 둘로 나누고 치워놨던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리는 것만 같았다.(일반화가 아닌, 단순한 ‘인지’임을 짚어둔다.)
수많은 사람의 경우들을 다 헤아릴 순 없더라도 가늠은 할 수 있어야 했다는 반성을 잠시 했다. 이 장면이 혼합된 두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지를 끌어왔다면 다음의 장면은 오직 조선에 대해 깊이 생각지 못했던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찌르며 들어왔다.
경주로 이사를 간 어린 작가는 조선인 아이들도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웃에도 조선인이 있고 동네에도 조선인(대개 양반)이 많았다. 그 중 한 아이가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밤마다 조선 사람들이 왕릉에 가서 빈다는 것을.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우리가 잘 아는, 커다란 언덕 같은 신라의 그 왕릉 앞에서 경주 사람들은 일본의 패배를 기도한 것이다. 작가는 충격을 받고, 그 조선 아이에게 일본인들에게 그 얘길 해선 안 된다고 말해준다.
머리가 띵했다. 나는 편협한 중부 출신으로서 조선-고려-삼국의 문화재, 문화재가 있는 지역과 ‘일제강점기’의 자연스러운 매치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왕릉이 지어진 이래 끊임없이 그 앞에서 뭔가를 기도하고 바라왔을 것인데, 감히 눈에 익지 않았다고, ‘관광명소’로서만 익숙한 그 풍경을 생각하는 데 그쳐버린 채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곳곳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시야가 확 넓게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좁은 시야와 단순한 판단에 안주하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도 창작을 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게으르게 상상하고 말아왔다는 걸 깨달으니 식은땀까지 날 지경이었다.
작가의 눈을 통해 비춰진 세상, 작가의 주변 위주이지만 책은 꽤 소상히 당시의 곳곳을 비추면서 멀리서의 세계도 잊지 않고 짚으며 흘러간다. 내가 끝까지 작가를 단순히 불편하게 인식하고 덮어버리지 못한 이유는, 끝까지 반복되는 그의 성찰과 반성, 군국주의-전쟁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아주 개인적으로, 그가 보고 쓴 세상, 조선이 고작 그 사이에 내 마음 속에 깊이 남아버린 탓도 있다. 같은 것의 같은 점을 좋아하게 만든 작가를 쉽게 미워할 수 있을까. 엄청난 거리를, 엄청난 차이를 사이에 둔 작가와 독자의 관계로서 몇 줄의 글만으로 그와 나의 연결을 깨닫게 된다는 건 여러 번 반복해도 참 익숙해지지 않는 신기한 감상을 동반한다.
작가는(그리고 작가의 어머니는) 당시 조선인 아주머니들을 ‘오모니’, 어린 식모들을 ‘언니야’라고 불렀다. 일본 아이에게 선뜻 용돈을 쥐여 주려 한 ‘오모니’, 주인집 딸을 집까지 데려가 함께 널뛰기를 뛴 ‘언니야’. 보리피리를 알려준 조선인 소년, 왕릉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이야기 한 아이, ‘그들’의 곁에 살던, 그 침략자들의 ‘이웃’들. 그리고 그들조차 사랑한 조선의 천지, 경주의 남산, 개울과 들풀...
‘사이’에 있던 것들을 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그래야만 ‘사이’의 나도 세상에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독을 권한다. 번역과 고증이 꽤 잘 되어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