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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작별」 非의 경계

등록일 2024.04.18 / 작성자 윤*림 / 조회수 1029  

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작별」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소설을 빼곡이 채운 물음표에 숨이 막힌다. 물음표를 아주 가까이 들여다봐도 물음표고 아주 멀리 떨어져도 물음표다. 묻지 않는 질문들이 심장에 꽂혀 맥동한다. 읽는 내내 가슴께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흥건한 마음으로 서평을 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 전에 추운 나라로 가면 되지. 남극이나 북극으로.”

 

미로 같은 도서관을 헤매다 책을 겨우 찾았다. 내가 찾는 책이 맞는지 아무렇게 펼친 순간 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이 자기소개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 ‘날 냉장고로 데려가.’ 얘기하는 듯한 작은 눈사람처럼 책은 꼭 겨울 박명 같은 빛깔로 얌전히 덮여 있었다.

이런 내용일 줄 알았는데, 이런 내용일 줄 몰랐다.

짧막한 요약만 보고선 평범하게 다정하기만 한 소설일 줄 알았다. 그 온기가 흉터 위로 배어나오는 것일 줄은 몰랐다. 소설의 요약, 단순하게 정리된 소재만 봤을 땐 이런 생각을 했다.

눈사람이 되는 것이 곧 사망선고가 되는 사람들이란 어떤 걸까?’

공기와 얼음결정이 층층이 쌓인 가운데, 심장 하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는 것이 죽음이 된다는 걸까, 마음과 사랑이 사람을 파먹는다는 걸까. 끝까지 놓지 못한 사랑이 그녀를 죽일 줄 알았다. 아주 다정하고, 아무렇지 않고 상처도 흠결도 없는 어떤 여자의 마지막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눈사람처럼, 희고 가만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소설은 한 순간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싱글맘이다. 떨어져 사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한 동생, 어떤 감정을 함께 교류해온 남자가 있다. 그런데 눈사람이 되어버렸다. 손가락을 비비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나간다. 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월 하순이지만 날은 점점 풀리려 하고, 당장 오늘 밤의 날씨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재앙같은 비일상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끝을 알 수 없는 매일을 살아간다는 막막함. 어쩌면 고독, 어쩌면 불안정함, 바깥의 사회로부터 얻은 흠집과 안의 관계로부터 얻은 흠집들. 어쩌면 그녀는 이미 눈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명백한 비인간의 육신을 갖게 되었을 때, 그녀는 미묘한 해방감까지 느끼는 것도 같다. ‘인간을 벗어난, 인간으로서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 건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았다.”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녀는 아직 사람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인간이란? 사람이란? 신체의 구성 만에 얽매일 수 없고 이성만으로 판단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생각과 의지만이 모든 걸 판단할 수 있나? 관계는? 집단과 사회는? 인간의 모든 걸 갖춘 사람을 사람도 아닌 것이라 욕할 때, 그 근거는 대개 무엇들이 사용되나? 타당한가? 일반적인가? 일반적이라고 타당한 것이 되는가? 어떻게 그 많고 많은 비인간화 소설이 이렇게까지 새롭고 깊고 익숙할 수 있나? 우리와 함께 살아온 눈사람이라는 게, '우리'의 눈사람이라는 게 말이 되는 건지, 도대체, 어떻게?

담담하고 정교한 문장들로?

이렇게 잔인한 따뜻함으로!


4. 시기가 맞물려 그녀의 악몽이 유독 거세게 마음을 헤집는 면이 있었다. 이어지는 슬픔 속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노고 속에서, 그녀의 과거, 그녀의 생각, 그녀의 상념 속에서 인간이란?’이라고 쓰인 말풍선이 흩어지지 않고 떠다닌다. 이렇게 중심이 견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탄스럽고 절망스럽다. ‘허투루가 없구나. 이쯤 되면 눈뭉치가 된 그녀의 손이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의문을 갖게 하는 아쉬운 점이 아니다. 그것 마저인간의 정의와 경계를 사유하게 하는 질문 같다.


그녀는 아직 사람이라잖아. 작가가 생각하는 사람의 정의를 가능케 하는 기준에 포함되는 걸지도 몰라. 스마트폰 터치.’


소설의 전개를 위한 도구 기능 같은 건 차치하고, 농담으로.


사람들은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좋아한다.

어느 순간 눈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사회, 관계로부터 마음을 손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래서 사람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스스로를 사람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눈사람 속 뜨거운 심장. 그 안엔 눈 녹은 물이 아닌 피가 들어있을 것이다. 세차게 펌프질하며 주변을, 스스로를 녹여버리고 마는 그것이 결국 작가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응원, 혹은 인사,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감정들일 수 있는 소설의 결말을 꼭 모두가 읽어봤으면 좋겠다. 봄에도 좋고, 겨울에도 좋고 가을에도 좋지만 4월이 끝나기 전에도 한 번은 읽어보길 바란다. 1월 하순도, 아예 한여름 중심에서도.

작별을 읽었으니 이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야겠다.

겁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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