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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소설 만세』 하드커버는 반칙이다

등록일 2024.03.27 / 작성자 윤*림 / 조회수 501  

[단행본] 『소설 만세』 하드커버는 반칙이다
 

소설 만세

 

정용준, 2022, 민음사

 

하드커버는 반칙이다.

 

아니, 이 책의 표지 디자인부터가 반칙이다. 연보랏빛 머메이드지(추정)에 녹박으로 새겨진 의미심장한, 세련된 인물의 얼굴도 반칙이고 담백한 보랏빛의 책갈피도, 깔끔하게 마감된 표지 뒤편, 그 위에 단단하게 인쇄된 작가 소개,

기지개켜듯 뻐근하게 펼쳐지는 표지와 페이지, 손에 딱 맞게 들어오는 책 모서리, 줄줄이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들, 문장들, 그리고 제목.

소설 만세라니, 이걸 처음 생각해낸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비겁하다. 좋은 모든 걸 낚아다 무두질한 책 같다. 나는 책을 펼친 첫 순간 패배했다. 어쩌면 도서전에서 책을 집은 그 순간, 아니면 표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소설 만세라니, 소설에 만세를 붙이다니. 적어도 소설을 먹고 사는 사람 중 이 책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실 진짜 반칙인 건 작가의 모든 사유다. 그리고 그걸 정갈하게 플레이팅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이다. 내공이다. 어느 정도 알 수 있음으로 이야기의 문을 여는 작가는 차근차근 휘몰아쳐 이 에세이를 읽는 내 목소리가, 목소리가 읽는 에세이가 내 안의 것인지 바깥의 것인지, 작가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 깊은 곳으로 녹아든다. 글을 쓰는 사람의 속을 매순간 스치는 바람들, 마음을 마모시켰다가 또 추켜세웠다가, 의지를 깎아내렸다 웬 희망의 모래 산을 쌓아올리는 변덕들.

다 똑같군.’하며 읽게 되지만 그런 생각을-공감을 일으키는 문장들이 결코 쉽게 쓰일 수 없는 것들임을 안다. 소설을 쓰는 법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귀를 쫑긋 세우게 되고,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등장할 땐 느긋이 앉아 몸을 까딱이며 듣게 된다. ‘듣게 된다.’ 작가()()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기 전에 읽은 책이었다. 목소리가 어떤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농담을 하는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펼친 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들린다. 내 눈이 활자를 훑는데 눈이 아닌 귀로 문장이 들어온다. 귀로 들어온 줄글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서 펑! 터지며 심장을 찌르기도 한다. 찌르르한 전율. 그건 곧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혈관 곳곳을 점령한다. 특히 손. 당장 무엇이든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된 손이 결국 키보드를 찾게 되는 마법. 내 생각에 이건 사랑의 전이다. ‘소설 쓰기 어려워 흑흑.’하는 절망도 조금씩 상기되어 묻어나지만 그 마법만큼 독하게 옮진 않는다. 세계와 맞닿은 허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 사람을 홀딱 반하게 만들까, 감쪽같이 속여 버릴까 매일 작당모의 하는 사람들. 잘 아는 것들을 더 잘 말하기 위해 문장 속 목소리를 가다듬는 사람들. 남의 거짓말을 읽을 때 행복해 하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들을 진짜만큼 사랑하는...

소설과 삶, 마음과 문학이라는 것들 사이를 자신만의 템포로 거니는 에세이는 결국 그 뒤를 쫓아가고 싶게 만든다. 은근슬쩍, 비밀스럽게 어설프게 따라해보고 싶게도 하고 하게 전 아닌데요?”하며 정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또 슬쩍 그쪽을 돌아보며 배울 것을 훔치게도 만든다. 에세이는 가르침없이 그저 말하고만 있는데도 그렇다. 아주 질투 나고 욕심나는 탁월한 말하기 기법. 저만큼이 되려면 내가 뭘 어떻게, 얼마만큼 해야 할까 헤아리다 에이, 하고 드러눕게 되는, 그래도 또 일어나서 뭐라도 해보게 만드는 마성의 언변.

책 먹는 여우를 보고 큰 세대라 그런지, 재밌는 책을 읽으면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든다. 너무 아름다운 책을 봐도 그렇고, 너무 질투 나는 책을 봐도 그렇다. (금메달도 씹어보는데, 책 한 번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 제목부터 자신을 멋지게 어필하고 있지만, ‘소설과 한 번이라도 엮여본 사람은, 소설책과 옷깃이라도 스쳐본 사람은 꼭 읽어보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하고 싶다. 굳이 경고인 이유는 안 읽는 게 손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을 더 생각해보다, 의미가 없겠다 싶어 마음을 접었다. 누구누구의 에세이가 밀물처럼 차오르는 요즘에, 한 번 뻐근하게펼쳐 읽어보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을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하드커버는 반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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