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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우리 아이 공시 합격을 위한 첫 걸음
(사진출처: 안전가옥 홈페이지 https://safehouse.kr/books/mysterydepartment)
『기이현상청 사건일지』
이산화, 2022, 안전가옥
"정말 고맙다. 과인이 그대에게 큰 빚을 졌구나."
'애민정신... 정말 감동적이다...'
하고 찡해지는 코끝, 그러나 곧 고개를 드는 의아함.
'그렇지만... 지금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인데?'
자각하는 순간 작가는 구시대적인 모든 것들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군주주의, 민족주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시대, 생활 속속들이 파고든 곰팡이들, 물이끼들, 멀리선 '저런 의견도 있는 거지.'하며 모른 척 지나치지만 그 당사자들로서는 쉽게 떨쳐내기 힘든 편견, 인상, 일상, 그들의-우리의 발목을 잡는 모든 것들을.
그중 단연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기이현상청’이라는 정부기관의 일상을 이토록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담아낸 작가의 필력이다. 기이현상청이라는 정부부처 자체가 일반인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기관인 만큼, 기이현상청의 업무 이야기를 관계자,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은 쉽게 이해하거나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자칫 딱딱하고 지루한 공무 이야기에 그칠 수도 있었던 소재들을 매력적인 캐릭터와 ‘실화’에 기반한 사건, 빼곡하고 촘촘한 전문지식들과 버무려냄으로써 이전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이현상청 소설’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의 기이현상청 업무 보고서를 독파”했노라 이야기한다. 약 17, 18년의 분량에 가까운 공기관의 업무 보고서를 독파했다는 그의 말은 무엇보다 철저한 고증과, 우리가 들어봤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알지 못하는 사건들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하나같이 유별나다. 아주 평범한 듯 하면서도 ‘촉’ 같은 것은 꼭 지닌 인물들이 이 정부부처의 한복차림 직원들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촉’ 있는 사람들의 주위를 에워싼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유별나고 결함 있고, 각자의 일로 바쁘게, 서로 부딪치고, 협동하고, 구질구질 궁시렁궁시렁, 그러면서도 힘 있게, 주저 없이 자신의 할 일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모습들은 유쾌한 동시에 고무적이다. 공무원(혹은 하청 직원)들의 의무감과 책임감 같은 것으로 뭉뚱그리기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귀신’, ‘요괴’, ‘이매망량’, ‘이스시’, ‘버닙’, ‘에너지 생명체’ 등등 이 모든 것을 통트는 ‘기이’와 전혀 연관이 없는 우리도 함께 긴장하고 전율하고 인물과 동시에 숨을 뱉게 만드는 ‘기이’한 어떤 힘. 나는 이것이 이 책 또한 또 하나의 ‘기이’임을 증명하는 현상 중 하나라고 믿는다. 다른 말로는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에피소드식 구성형식을 취해 커다란 한 주제를 다양하고 다각적인 소재와 시선으로 분화하여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각종 병폐부터 현대인 개개인의 삶에 내재된 정체성, 신념, 일상, 사랑 문제까지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훑고 지나가며 읽는 이의 생각을 환기시키는 아주 흥미로운 오컬트SF소설입니다.’
별로다. 이렇게는 어떨까.
‘이 소설은 실재하는 국가기관의 다양한 ‘기이’사건들을 기반으로 창작된 리얼리즘 소설입니다. 단, 모든 이야기는 픽션이며 기이현상청은 소설 집필에 단순 자문의 역할만을 수행하였습니다. ‘기이서지정보관리위원회’가 이 소설의 허구성과 안전성을 보증합니다.’
기이현상청은 소설 속에서나, 소설 밖에서나 우리의 현재에 있다. 우리도, 기이도, 작가도 독자도 모두 가장 끄트머리의 미래를 살아간다. 사실, 그런 낭떠러지 같은 매일을 까치발로 걸어가다 보면 기이도 귀신도, 아이스크림도 삼각김밥도 별일이 아닌 것 같은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순간 가장 필요하다. 최적의 처방약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이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있던 내 발밑이 비춰진다. 작가가 ‘지금’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겨 놓았기에 그 세계의 곳곳마다 우리가 있다. 같지 않으나 닮아있고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들. ‘거울세계’처럼 완전히 뒤집힌 듯도 하면서 우리의 지금을 꼭 닮은 그 세계. 가장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역시나 그럭저럭, 밍기적밍기적, 출근시간에 출근하고, 퇴근시간에 퇴근하는, ‘책임’과 ‘의지’ 사이를 오가면서 그 다른 위치의 힘을 동력삼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멈추는 일이 없는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세계.
간혹 묘사-장면-대사가 유치하다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것마저 매력적이다. 그런 모습이 이 세계, 소설의 태도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기이현상청, 혹은 그 부속, 산하 기관의 취업을 꿈꾸는 학우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