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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한스 애빙 지음 / 박세연 옮김
예술을 누가 정의하는가?
스스로 예술활동을 하면서 경제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예술의 정의와 사회적인 인식의 관계를 조명한다. 대중, 특히 ‘예술세계’의 사람들은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함으로써 예술작품에 등급을 매기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기술한다. 이들은 더 예술적인 작품과 덜 예술적인 작품들을 하나의 선 위에 상대적인 순서에 따라 연속적으로 나열하고 어느 지점에서 경계선을 그어, 경계선 위는 상위예술, 순수예술로, 혹은 ‘진정한’ 예술로, 경계선 아래는 하위예술, 대중예술, 혹은 예술이 아닌 것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후원영역이 시장영역보다 더 고귀한 것인가?
저자는 예술의 가치가 상업성의 외면과 비례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조장되는 문제를 제기한다. 갤러리에서 가격표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가격흥정과 관련된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아니면 예술적인 대화와는 완전히 분리해서 다루는 모습들을 통해서 예술세계가 시장영역의 가치를 숨기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예술세계가 높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영역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
예술가들에게는 헌신만을 요구해야 하는가?
예술가들은 보상을 추구하면 안 되는가? 저자는 한 예로서 독일의 자동차 기업 아우디가 네덜란드의 모던아트를 대표하는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 했던 제안 관련 에피소우드를 소개한다. 미술관이 부속건물을 새로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겠으니 대신 새로 들어설 레스토랑 옆에 아우디 자동차를 전시하고, 본관과 조금 떨어진 전시 공간에 네덜란드와 독일의 관계를 주제로 특별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하여 사회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신문에서 시작되어 시의회로까지 논쟁이 확산되면서 ‘예술세계’의 전문가들을 대부분 미술관장이 예술의 자율권을 포기했다고 비난했고 아우디가 미술관을 상대로 무리한 조건을 제시했다고 주장하자 결국 아우디의 제안은 철회되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들도 다양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보상도 필요하다. 그러나 예술가는 자유롭고 헌신적인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서 동시에 상업적인 태도에 자책하지는 않은가라고.
예술가에게 소득의 의미는 무엇인가?
위에서 열거한 사회적인 인식의 문제와는 별개로 저자는 예술가들의 소득이 낮은 이유를 개인의 차원에서도 매우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승자독식 현상, 스스로 평범한 직장생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다른 분야에 비해 비금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 위험감수의 성향, 자만심과 자기기만(자신의 능력과 행운을 지나치게 신뢰하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무시하는 경향), 다른 분야에 비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오류 등을 열거하면서 예술가는 과연 무모한 도박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술창작기초학부 한수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