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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해지는 시간이란

등록일 2020.11.29 / 작성자 황*미 / 조회수 198  

낡고 해지는 시간이란

 

 

- 사랑받는 날에는 진짜가 되는 거야 The Velveteen Rabbit

 

마저리 윌리엄스의 The Velveteen Rabbit가 발표된 때가 1922년이었다. 그간 평론가들에게 자주 거론되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노출이 많지 않았어도 이 작품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이 분명하다. 소설만 쓰던 마저리 윌리엄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지 어언 100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만도 조금씩 다른 제목과 다른 양장으로 여러 버전이 나왔을 만큼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전 명작이다.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굳이 밝히자면 아름다운 작품임에도 묘하게 은밀한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낡고 해지는 시간이란 낡고 해지는 시간이란

 

봉제인형이 화자인 이 작품의 핵심에는 생명을 가진 진정한 존재가 되는 조건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랑받는 것.

 

진짜가 되기 위해 사랑받는 것!’이라는 명제가 어디 이 이야기에만 적용될 것인가. 봉제인형으로 비유되었으나 제 발로 세상을 디디고 사유하기 전의 모든 대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어린애(봉제인형)이고, 제 몫의 삶을 깨닫기에 절대적인 젖줄이 바로 사랑받는 것이다. 허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상호 교감이 이루어져야 함이 관건이고 이는 이야기 전개에 크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이보다 근본적인 조건이 있다면, 봉제인형의 진짜가 되고 싶은절실한 동력이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시작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목받는 순간은 지극히 짧아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사실에 의문을 갖는 소수가 있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 시작을 봉제인형이 진짜가 뭐예요하고 어린애답게 묻는 것으로 표현했다.

아이의 놀이방에서는 때대로 놀랍고 신비로운 마법이 일어나는데 그 마법이란 아이가 인형을 그냥 갖고 노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랑하게 되면 진짜가 되는 일이다. 아이의 놀이방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문과 기대를 가진 봉제인형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진짜는 태엽으로 움직이는 건가요?

조금씩 변하는 건가요?

진짜가 되면 아픈가요?

당신은 진짜인가요?

 

봉제인형의 질문에 대해 놀이방의 노인격인 조랑말이 말해준다. 진짜라는 건 어떻게 생겼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일이라고.

 

진짜가 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그래서 쉽게 고장 나거나, 날이 서 있거나, 살살 다루어야 하는 것들에게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아. 진짜가 될 때쯤에는 누군가 아주 많이 쓰다듬어줘서 털도 다 빠지고, 눈도 떨어지고, 팔다리도 너덜너덜해질 거야.

 

매우 비유적이다.

내면이 부실하여 잘 망가지거나 모난 돌처럼 공격적이거나 비위가 약하면 성숙한 자아가 되기 어렵다는 뜻을 이렇게 순진하게 지적(知的) 허영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이야기의 모양으로 들려준다.

봉제인형의 낡고 해지는 시간이란 바로 아이가 인형을 끌어안고 깔아뭉개고 던지고 쓰다듬고 입 맞추는 친숙한 행위의 연속이므로 외양의 변화는 어린애 티를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동화의 장르에 어울리게 잘 드러낸다. 아마도 이런 장치들이 이 작품의 자리를 백 년이나 유지했을 터이고 앞으로도 내내 아동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려둘 것이다.

어떤 정보도 없이 이 작품을 만났을 때 섬세하게 느껴지던 슬픔의 정체를 굳이 설명하는 건 사족이다. 피노키오가 고래의 뱃속에서 나왔을 때 나무인형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놓고 사람의 아이로 거듭나는 장면과 유사한 견론이다. 누구라도 이 간결하고 상징적인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느낄 수 있다. 순수한 자기 존재가 되는 일이란 얼마나 깊은 아픔을 오롯이 끌어안아야 가능해지는 일인지. 마법은 마법사가 봉을 휘둘러 이루어주는 순간적인 눈속임이 아니다. 제 몫의 삶을 고스란히 겪어내고야 맛보는 매우 개인적인 승리감이다.

봉제인형은 진짜 토끼가 되는 꿈을 이룬다. 아이와의 사랑 교감이 있어 가능했던 마법이었으나 둘은 서로에게 묶이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언젠가 내가 가졌던 토끼 인형이라는 기억이고, 토끼에게는 비로소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움의 시작이다. 숲의 경계에서 각자의 길로 돌아서는 이별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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