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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사람을 구하는 모퉁이 집』
- Do van ranst
독일 청소년 문학 수상작품은 우리 시장에 꽤 소개된 편이고 독자 접근성도 좋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2007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성장기 청소년의 암담한 현실과 자아 정체성의 혼란 상황을 마치 연극무대를 보여주는 듯한 공간 설정으로 묘사해 냈다. Do van ranst 는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벨기에 작가로서 이 작품은 2004년에 벨기에의 크노케 하이스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 역시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강으로 막힌 막다른 지점. 짓다 만 다리가 보이는 집. 다리 공사에 참여했던 할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슬픔으로 굳어가는 할머니.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저주하며 비명 지르는 엄마. 게으른 아빠. 불온하게 달라붙은 레즈비언 친구. 밤의 원조교제 현장 등 작가의 선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명백하다. 공간 이미지가 선명한 동력에는 아마도 연극 무대를 경험하고 극본을 썼던 작가 이력과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었던 현장성이 투영되었으리라.
언뜻 이 작품은 굵직한 사건도 미스터리한 기법도 없어 지루해 보인다. 심지어 숫자로 일관한 소제목에서는 감정의 군더더기마저 싹둑 잘라낸 인상이다. 허나 매우 섬세하게 부려놓은 공간 설정과 소품 배치가 인물에 딱 맞춰진 독백 투의 진술과 간결한 문장으로 문제의 핵심을 진부하지 않게 이끌어 종내는 이 가족이 세상 끝에서 유쾌하게 탈출하는 장면에 박수를 보내고 싶게 만들고야 만다. 매우 교묘하게 즐거움을 주는 작법이다.
작품의 가장 안쪽 서사는 열다섯 살 주인공이 겪고 있는 성 정체성 문제. 안 그래도 불안한 청소년기의 성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는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치달아 마치 짓다 만 다리라는 공간 설정과 맞아떨어질 만큼 위태롭다. 이 문제는 새로울 것도 더는 들려줄 이야기도 없을 듯한 흔한 소재이며 여기서도 파격이나 명쾌한 답은 발견할 수 없다. 고작 네가 어떤 성향인지 알고 싶으면 남자를 ‘유혹해’ 보라는 제안 정도. 밋밋한 이 제안이 공감을 얻는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치밀한 환경을 직조해 놓은 작가의 능력, 일종의 오브제들 덕분이다.
마치 세상의 끄트머리에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듯한 집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건널 수 없는 강과 다리 역할을 할 수 없는 짓다 만 다리.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온 차는 강으로 곤두박질쳐 죽기 십상인데 ‘드라이버가 정신 차리고 핸들을 꺾으면 들이받을 수밖에 없는 집’이라는 공간이 매우 유쾌하면서도 명확한 의미가 된다. 온갖 상황이 최악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표제가 ‘사람을 구하는 집’이다.
아빠는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고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 젊은이가 주인공이 엄마와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될 상황임을 암시하는데 주인공은 규정된 환경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려 애쓴다. 바라보는 강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근처에서 밤마다 인간의 추악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원조교제가 횡행한다. 겪어본 엄마도 아직은 호기심뿐인 주인공도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이중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들을 통해 경계의 양날에 버티고 서서 중심을 잡으려는 청소년기의 어느 지점을 보여준다. 집을 떠날 때 게으른 아빠가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로 인해 잔디가 타고 불이 번져 집을 태우는 장면을 불꽃놀이라고 표현하는 유쾌함이 놀랍다. 기름이 새는 자동차의 꽁무니에 불이 따라붙어 죽어라 달리지 않으면 불길에 먹혀 버릴 위기 표현도 너무나 연극적이다.
사람이 죽는다고 다 비극일까. 막말을 일삼는 부부라고 죄다 부모 자격 미달일까. 여자애들끼리 사랑을 나눈다고 글러먹은 싹일까.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를 시설에 맡기면 불효일까. 할아버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흉악범의 해코지라고 상상하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걸까. 이 모든 게 자기 인생이라도 주도적일 수 없는 주인공, 이 시기의 청소년이 겪어내야 할 현실이다.
게으른 아버지가 짓다 만 다리의 책임자로 열심히 일하고 그 책임을 자기 약혼자가 이어받는 상상이 바로 주인공이 꿈꾸는 현실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낡은 의자에 게으르게 앉아 있고 약혼자 같은 게 없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