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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종
『사라지는 아이들』
로버트 스윈델스(Robert Swindells)
* 모든 어린이 도서관에는 이 책을 비치해야 한다. - 빅 이슈
* 카네기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소설이며, 앞으로는 노숙자들이
차지한 출입구를 보며 청소년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 선데이 타임즈
천미나 역. 책과 콩나무 2008
원제 : <Stone Cold>
‘빅 이슈’나 ‘선데이 타임스’ 외에도 이 책을 권하는 추천사에 이 책은 ‘어디서나 십대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라는 아마존 독자의 찬사까지 달고 있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묘사한 부분이 너무 비참해 때로는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으나 마주해야만 하는 청소년의 현실. 이는 책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섬뜩하고 믿을 수 없는 아동 청소년의 폭력 문제가 넘쳐나는 우리 현실 속에서도 너무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 되레 무감각해지는 경향까지 생기고 있으니 더더욱 이 책을 직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카네기 수상작’ 메달이 인쇄돼 붙어 있는 표지에 끌려 집어든 책이다. 작가는 생소했다. 우리 사장에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카네기 수상 외에도 ‘셰필드 도서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으니 떡밥에 넘어간 선택이었다고 해도 되겠다.
사실, 앞부분을 꽤나 읽도록 떡밥에 넘어간 나의 가벼움에 실소했다. 책을 선택하는 내 가벼움 중 하나가 바로 이름 깨나 알려져 있는 해외 수상작 타이틀이 붙은 것들은 큰 고민 없이 집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를 테면, ‘라가치 상’, ‘뉴베리 상’, ‘오스트리아 아동 청소년 문학상’, ‘독일 청소년 문학 상’ 같은 것들. 수상작에는 적어도 뭔가 있지 않겠나.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기본 이상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카네기 수상작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쉽게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 타이틀이 붙은 책이 처음이라.
처음은 괜찮았다. 그런데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서 떨떠름했다. 소제목도, 숫자도 붙어 있지 않은 챕터로 시작되더니 느닷없이 종이 색이 달라지며 ‘근무일지1’이라는 챕터로 나뉜다. 화자도 일관성이 없고, 화법도 일관성 없기는 마찬가지. 솔직히 좀 헷갈렸다. 책에 대한 검색 없이 추천사도 읽지 않고 심지어 작가의 말도 읽지 않고 본문으로 들어가는 게 내 독서법이다. 어쨌든 부딪혀보기로 했다. 책이 될 때는 그만한 근거가 있지 않겠나 싶은 믿음으로 고집을 부리는데 어느 순간 ‘아!’ 감탄사가 터지고 말았다.
‘근무 일지’로 진행되는 서사는 연쇄살인자, 그러니까 터무니없는 자기 논리로 살인을 일삼는 미치광이의 이야기고, 소제목조차 없는 이야기는 ‘링크’라는 가명으로 런던 한복판을 떠돌며 구걸하는 청소년 이야기다. 솔직히 살인을 너무 쉽게 하고 거기에 거지발싸개 같은 이유를 붙이며 그것도 논리라고 완전범죄를 꾀하는 ‘근무 일지’ 화자 때문에 이 책이 수상작이라는 데에 의아했었다. 아무튼, 서사가 엮이지 않는 중반부까지 화자의 맥락이 잡히지 않아 애매했다. 그러나 연쇄살인자 쉩터와 홈리스 링크의 교차점이 잡히는 순간 이 책의 컨셉은 물론 왜 수상작인지까지 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의 작품에 하나의 구성이 갑갑하여 다층적인 구성을 계획했다가 전체 아귀를 맞추느라 머리가 터지는 경험을 하고도 왜 이게 컨셉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군대에서 쫓겨난 쉘터가 거리의 부랑자들을 ‘처지’ 하는 게 사회악을 제거함이자 ‘지붕 있는 집’을 마련해준다는 논리 하에 자기 중대를 만드는데 살해 후 군인처럼 머리를 밀고 군화를 신겨 마룻널 밑에 나란히 뉘는 방식이다. 링크는 살해 대상자 중에 하나였다. 계부의 폭력과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링크는 그런 애로 태어났던 게 아니다. 우리 누구라도 그런 삶에 노출되어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얼음이 찬 운동화 속에 언 발을 어쩌지 못하는 처지가 될 수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의 그늘. 그렇게 배고프고 추운 소년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게 아니라 너무나도 간절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보통 소년이었음을 묘사하는 장면이 어찌나 절절한지 내 발이 다 시렸다. 기적처럼 홈리스 여자애와 사랑에도 빠지지만 사실은 그녀가 홈리스 아이들을 취재하고자 위장한 기자임이 밝혀지고 ‘매우 미안해하며 얼마간의 돈을 링크에게 쥐어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엔딩에서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인간의 면모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이다. 다 읽고 나서 작가 소개를 보니 어느 정도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하다. 기자가 그렇게 떠나지 말고 신문사의 단순 잡일이라도 연결해 줬더라면 싶은 마음은 감상일까. 섣부른 감정이겠지만 작위적이나마 그런 엔딩조차 없는 게 이토록 가슴 시리다. 우리에게도 이런 현실은 널리고 널렸으니 남의 얘기 할 때가 아니기는 하다. 어느 미치광이가 그런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글을 쓴다는 게 이토록 무의미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참으로 무기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