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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플루서 <몸짓들>-다시 읽고, 다르게 쓰기
빌렘 플루서 <몸짓들>(안규철 옮기, 김남시 감수, 워크룸프레스, 2018)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몸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글을 쓸 때 우리의 몸은 어디로 떠나 있을까.
몸은 거의 정지되어 있는 듯 보일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기 위한 웅크림.
한 없이 느리거나 무모하도록 빠른 손놀림.
언어에 굶주린 시선들.
책 갈피에 손을 넣고 주변을 본다.
글을 지우고 외부의 소음을 듣는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모든 움직임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행위들을 기록할 수 있을까.
무모하고 모호하고 무의미한 시간의 되풀이를
인간의 정동 행위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매체철학자인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은 제목 그대로
일상과 추상의 삶을 사는 인간의 몸짓들을
소통이론과 매체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은 기호와 정보를 낳고 그것은
타자와 세계와의 연결망을 구축한다.
지극히 사적이고 특수한 행위들 속에서
우리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사유한다.
우리는 사랑스럽고 정치적인, 그리고 미숙한 기계이다.
책의 목차들만 읽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글쓰기의 몸짓. 말하기의 몸짓. 만들기의 몸짓. 사랑의 몸짓. 파괴의
몸짓. 그리기의 몸짓. 사진 촬영의 몸짓. 영화 촬영의 몸짓. 가면 뒤집기의 몸짓. 식물 재배의 몸짓. 면도의 몸짓.
음악을 듣는 몸짓.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몸짓. 전화
통화의 몸짓. 비디오의 몸짓. 탐구의 몸짓.
이 책을 1년 가까이 가방에 넣고 다니고 있다.
일독한 뒤에는 생각날 때마다 꺼내 하루의 책점(占)을 치듯 읽고 있다.
밑줄을 긋는 몸짓에 대해 생각하며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읽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쓰는 몸짓의 변증법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말의 단어들과 나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아직 가상성 속에서 버티고 있는 단어들과 나 사이의 변증법이다.”(37p.)
“사랑의 몸짓은, 우리가
타인 속에 동화되고 소외를 극복하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몸짓 없는 모든 의사소통의 몸짓은 오류이다.”(79p.)
“음악을 듣는 것은,
피부를 경계에서 연결로 변화시킴으로써 피부를 극복하는 몸짓이다.”(169p.)
우리는 언제나 미숙한 몸짓 속에 던져져 있다. 그 미숙함을 망각하면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인간이 되고 만다. 이 책은 미숙함의 상태, 호기심의 상태를 유지하라고, 성찰하는 기계가 되라고 언어의 기름을 발라준다. 다시 읽으라고, 다르게 쓰라고 말한다. 다시 읽는 것으로, 다르게 쓰는 것으로 몸의 감각의 깨우고, 인류의 역사를 재고하고, 새로운 소통을 열게 해준다.
빌렘 플루서는 1920년 프라하에서 태어났고, 모든 가족을 강제수용소에서 잃었다. 평생 망명자로 떠돌다 강의를 위해 1991년 고향 프라하를 방문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