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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DB] 고착된 이마고(Imago)와 파괴된 이마고, 타나토스의 문을 두드리다

등록일 2019.11.22 / 작성자 고*혜 / 조회수 3801  

[학술DB] 고착된 이마고(Imago)와 파괴된 이마고, 타나토스의 문을 두드리다
-주남저수지 살인사건과 작품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에서 보이는 죽음욕동의 두 얼굴-


최근 수업 시간에 뮤지컬 <레베카>를 봤다. 반전 있는 스토리와 매력적인 넘버가 인상 깊었지만 나에겐 ‘댄버스’라는 캐릭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댄버스가 뿜어내는 감정은 슬픈데 강하고, 애처로운데 지독하고, 허망하지만 강했다. 심지어 죽은 인물한테 향하는 그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댄버스가 레베카를 생각하는 마음은 충성심보단 사랑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 <아가씨>의 숙희와 히데코가 떠오르기도 했다. 댄버스가 밝힌 두 사람의 얘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고, 내가 채워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이 아닌 그들의 안타고니스트인 댄버스를 응원했다. 커플이 깨지길 바란 건 아니고, 댄버스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되길 바랐다.


다 보고 나서도 댄버스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햄릿’처럼 댄버스를 중심으로 각색한 작품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서 댄버스 분석이라도 찾고자 KISS에서 검색했다가 흥미로운 논문을 발견했다. 이마고(Imago)에 대해서 주남저수지 살인사건과 작품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을 주제로 한 논문이었다. 댄버스를 위주로 읽어보았다.


댄버스는 해체되고 파괴된 이마고에서 소개된다. 논문을 읽어보니 레베카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댄버스가 뜻밖에도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나르시시즘은 이렇다. 원래 사람에게는 자아를 향한 리비도 집중이 존재하며 그 중의 일부는 대상을 향해 발현된다. 대상을 향했던 리비도 집중은 대상을 상실하고 난 뒤에 자연스럽게 자아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돌아온 리비도가 어떤 형태를 가지냐에 따라 나르시시즘인지 아닌지, 나르시시즘이라면 어떤 종류에 속하는지가 구분된다. 나르시시즘의 구조에 따르면 댄버스는 자기자신만을 사랑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상상적 거울, 이마고(Imago)를 통해 상대를 바라보고 행동했으며, 레베카는 그 대상이었을 뿐.

솔직히 두 사람의 우호적인 연대 혹은 사랑이 존재하는 관계를 기대해서 댄버스가 나르시시즘이라는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물론 뮤지컬에서 집착하고, 절규하는 댄버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정상적인 사랑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왠지 씁쓸하기도 하고, 레베카가 이래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까 싶기도 하고. 댄버스의 이런 면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관점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원래 악당이 매력적이긴 한데… 댄버스의 그 매력적인 광기와 절규를 단지 나르시시즘이었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아쉽다. 나 같은 관객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관점의 댄버스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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