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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책] 가혹한 현실과 무지갯빛 환상, <유리동물원>
가혹한 현실과 무지갯빛 환상, <유리동물원>
예술경영 이유성
<유리동물원>에서는 인물들이 가지는 과거에 대한 환상과 현실 도피 욕망을 형상화하는 상징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먼저 톰은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경제적인 책임을 모두 지고 있다. 현실 도피 욕망은 ‘영화’와 ‘아버지의 사진’. 톰은 그 스스로의 가치관과 현재의 상황에서 큰 괴리감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그가 하고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이다. 답답하고 무능한 어미와 누이를 떠나, 아버지처럼 자유롭고 싶은 열망 역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매개체가 바로 그가 좋아하는 ‘영화’와 집 거실 한 중간에 놓인 ‘아버지의 사진’이다.
어머니 아만다는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여성이다. 본능을 따라 즉, 감정에 충실해서 아버지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후회하는 그녀는 톰이 현실감각을 잊은 채 그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 하자, 본능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강요하고 꾸짖는다. 그녀가 선택 후 후회를 겪었기 때문이다. 톰이 남편처럼 떠나 버릴까 하는 걱정들로 아들의 꿈을 지지해 줄 수 없는 아만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의 화려했던 과거 속에 얽매여 로라의 연애와 결혼을 간섭하고 강요한다. 톰과 로라에게 거는 기대가 굉장히크다. 이러한 아만다의 과거에 대한 환상과 현실 도피 욕망을 형상화하는 상징은 그녀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아가씨시절의 고향인 ‘블루 마운틴’과 ‘노랑 수선화’이다. 특히 젠틀맨 콜러, 짐이 나타난 후 아만다의 현실 도피 욕망은 극대화가 된다. 딸 로라를 소개 시켜주기 위한 자리임에도 자신이 더 들뜬 채 노랑 드레스를 옛날처럼 아름답게 꾸미고 나아오고, 계속해서 과거의 ‘블루마운틴’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톰과 로라에게 항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지만, 실질적으로 그녀 역시도 과거 속에 사는 인물이다. 그러나 톰과 로라에 비해 아만다는 그 정도가 덜하며, 현실을 가장 잘 직면하고 살아간다.
로라는 한쪽 다리가 절름발이라는 사실로 굉장히 위축되어있고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현실 도피욕망으로 삼는 것은 바로 ‘유리동물’. 작품 속에서 그녀는 불안정한 순간에, 항상 유리동물을 만지작거린다. 유리동물을 만지작거리다가도,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숨긴 채 타이핑 연습을 하는 척 하기도 한다. 이처럼 유리동물은 로라에게 있어 은밀하고 가장 가까운 대상이며 도피처이다. 쉽게 깨지기 쉬운 유리동물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결점으로 인해 한없이 연약한 모습으로 움츠려있는 로라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 짐이 나타났을때도 그가 자신이 고등학교시절 연모해온 짐 오코너라는 것을 알고 놀란 후 축음기로 가서 음악을 틀고 안정을 취하려 한다. 이처럼 축음기 역시 로라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하나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다. 학창시절, 그녀가 학창시절에 폐렴으로 학교를 빠진 후, 는 그녀에게 어떤 것 때문에 학교를 오지 못했냐는 질문을 한다. 로라의 말을, pleurisies를 는 blue roses로 듣게 되고, 그 후로 짐은 로라를 ‘푸른 장미’라 부른다. ‘푸른 장미’는 로라에게 그때의 짝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자 그녀를 아름다운 말과 눈빛으로 바라봐 주던 이에 대한 환상이다. 아름다우나, 현실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 장미’는 일반적이지 만은 않은 로라의 성격과 면모를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로라와 관련되어있는 상징들은 모두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로라의 성격을 상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당대 미국의 사회, 젊은이들의 현실 도피 욕망으로 사용된 상징물은 ‘파라다이스 댄스 홀’이다. ‘파라다이스 댄스 홀’은 당대 미국인들의 포괄적인 현실도피 욕망의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재즈, 술, 섹스에만 빠져 닥쳐올 위기는 생각지도 않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일시적인 쾌락 기쁨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화재비상구’라는 상징은 인물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동시에 가장 포괄적인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 톰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출구 역할을 하는 화재 비상구는 이 극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주요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명칭처럼, 비상구는 현실에서 체험하는 좌절과 현실의 비참한 가혹함을 피해 도피하는 길을 제공한다. 절망이라는 불에서부터 대피하기 위한 장소이다. 톰은 아만다에게 잔소리를 듣고 난 후엔 ‘화재비상구’로 혼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곤 하면서 머리를 식히곤 한다. 이처럼 ‘화재비상구’의 공간은 등장인물의 도피처이자, 지긋지긋한 집을, 건물을 벗어나는 통과 문이다.
<유리동물원>속에 나타난 주요 세 인물의 현실과 환상의 괴리는 심각하다. 어떤 식으로 각 인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톰이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 그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극장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오는 마술, 공연을 즐기며, 영화 속 이상세계를 탐험하고 누비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은 지금 ‘관’속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의 직장 역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다. 쉬는 시간에 틈틈이 시를 쓰며 달랠 뿐이다. 톰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환상은 가혹한 현실을 잊게 하는 치유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뛰쳐나간다. 마치 그의 아버지처럼. 로라와 짐을 연결 시켜주려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로라에게 더 상처를 남긴 결과를 보았으며, 신발 창고에서 해됨으로 현실에 좌절한다. 이를 통해 꿈을 쫓아 떠나지만 이것 역시도 완벽한 해소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지막에 다시 나레이터로 등장한 톰은 여전히 누나에 대한 무게를 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를 한다. 로라 역시도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크게 느낀다.
로라는 고등학교시절 잠시나마 행복했던(사실은 추억이랄 것도 없는) 짐을 연모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환상에 빠져있다. 유리동물과 축음기의 음악을 들으며 그녀의 도피처를 찾아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버린다. 짐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와의 꿈만 같은 시간을 잠시 보내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기던 일각수의 뿔이 짐의 실수로 인해 부러지게 되고, 짐과의 시간도 덧없었음을 직면하는 순간 그녀는 오히려 침착한 모습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드디어 로라가 자신만의 우리를 깨고 나오는 것인가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결말부분에 가서도 로라의 모습이 크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는 전혀 없다. 톰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현실로부터의 완전한 도피, 괴리감 해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만다는 톰과 로라에 비해 비교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과 환상 사이를 구분하고 균형을 취하려 하는 인물이다. 아만다가 아가씨 시절 전성기 추억은 마치 우리가 가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위안을 얻는 정도이다. 그녀에게 과거 회상은 현실의 힘든 상황을 참고 견딜 수 있게 하는 힘 정도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현실과 환상 사이의 괴리 정도는 가장 적은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만다 역시도 결국 아들 톰이 떠나는 것을 겪게 하면서, 그녀가 다시 한번 좌절하고 상처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이처럼 <유리동물원>은 불완전하고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세 인물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비참한 현실과 괴리에도 불구하고, 짐의 등장, 톰의 탈출, 일각수의 뿔이 부러짐에 따른 로라의 대사 들을 통해서 희망의 빛을 조금씩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