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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지하세계의 근원 – 영화 <기생충>과 김기영 감독
[교수 서평 - 영상학부 손태웅교수]
봉준호 지하세계의 근원 – 영화 <기생충>과 김기영 감독
*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인터뷰에서 “내가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받고 <기생충>이란 영화가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이 영화를 만든게 아니다. 한국영화 역사에는 김기영 감독님 같은 위대한 감독님들이 계시다. 아시아의 거장들을 능가하는 많은 한국의 마스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올 한해를 거쳐서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 그대로, 영화 <기생충>은 김기영 감독의 의미심장한 현현이다.
<하녀(1960)>, <화녀(1971)>, <충녀(1972)>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자기 변주의 작품들에서 김기영 감독(1922~1998)은 부르주아 가정의 욕망과 성공의 상징인 2층집 수면 아래, 위태로운 계단을 내려가 맞이하는 죽음의 공간인 지하실을 배치한다. 김기영 감독은 달콤한 자본주의의 가장자리에라도 편입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예측불가의 타자(가정부, 내연의 처 등)에 의해 부르주아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마는 과정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허약한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통렬하고 충격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봉준호 감독 또한 자신의 영화에서 종종 지하공간에 대한 괴이한 애착을 보여 왔다.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아파트 지하실, <살인의 추억>에서의 (보일러실을 개조한) 지하 취조실, <괴물>에서의 한강 언저리의 괴물의 지하 아지트들은 취약한 표면 위의 구조를 조롱하고 뒤집으려 시도한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 전설/귀신 이야기로 등장했던 ‘보일러 김씨’는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들에게 살인범으로 오인(?)받으며 리얼리티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가, <괴물>에서는 리얼리티를 격렬하게 잠식하고 초현실적으로 파괴하는 괴수로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에서는 지하 공간에 갇힌 인물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계급적, 사회적 근거들(괴물이 되기 직전에는 사업의 실패가 있었다)까지도 다루어진다. 김기영 감독의 ‘2층집 아래 지하실’을 노골적으로 오마주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축적으로 우아하고 계급적으로 고상하고 가정적으로 평화로운 집 아래의 깊고 깊은 지하 공간(숨겨진 지하 벙커)에서부터 피바람이 불어와 추악한 추락으로 끝간데까지 몰고 가 버리는 이 풍경, 그 파국의 악몽과 불온한 상상력은 분명 위대한 영화작가 김기영을 배우고 추앙하다 김기영의 발전적 후계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로 읽힌다.
그렇다. 영화학도 시절의 봉준호 감독은 (누구나 그랬듯) 김기영 감독에 열광했고, “의지다, 의지!” 같은 이상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김기영의 문어체 대사를 컬트의 숭배의식처럼 따라했었다. 김기영의 도발적인 캐릭터들은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실패한 대왕 카스테라 사업’ 등의, 시대를 비틀며 레퍼런스하면서 언제라도 터질 듯 위험한 봉준호의 캐릭터들이 되었고, 김기영의 문어체 대사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라는 대사로 계승·변주되었다.
반면, 김기영을 뛰어넘고자하는 봉준호의 재능과 야심은 다른 측면에서 빛을 발한다. 김기영 감독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여주인과 힘을 잃은 남편, 팜므 파탈로 변신하는 타자의 삼각관계, 성적인 긴장에 파국의 드라마를 맡겼다면, 봉준호 감독은 계급적 긴장에 보다 더 충실하려는 듯 보인다.
그의 통찰력은 ‘냄새’라는 하나의 화두로도 가장 강렬한 국면을 만들어내는 탁월함을 보이는데, 그것은 부르주아가 수십 년 동안 타보지 않은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 또는 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반지하’(번역의 승리라고도 하는 달시 파켓도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직역에 가까운 ’semi-basement‘라고 번역하게 된) 냄새이다. 범접할 수 없는 계급의 경계를 그어버리는 그 냄새는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잠시 폭우로 뒤덮여 버리는데, 부르주아에겐 낭만이나 캠핑의 취소일 뿐이지만 반지하 사람들에게는 이재민의 운명을 불러오는(<괴물>에서도 등장한 체육관 단체 쪽잠) 폭우는 낮은 계급 사람들끼리의 동정과 경쟁이 무질서하게 뒤엉킨 광기의 장면들과 절묘하게 어울리다, 다시 뚫고 올라와 피비린내로 바뀌어버리는 강렬한 계급의 냄새에 파국의 자리를 내어준다.
이렇듯 김기영의 계급적·성적 긴장감은 봉준호의 계급내·계급간 긴장감의 최대치로 치환되었으며, 김기영의 과장되고 그로테스크한 여성의 욕망·모성 부정의 상징과 애브젝트함은 봉준호의 폭발할 듯 우스운 풍자와 간담이 서늘하고 적나라한 시대 반영으로 치환되었다. 우습다가 황당하다가 촌철살인이다가 잔혹한 그것이 김기영을 계승하면서도 탁월하게 변형시킨 지점의 ‘봉준호 장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남성 사회가 단지 아름다움으로 규정했던 여성의 신체를 불쾌감을 주는 신체 내부적 요소로 보여주면서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애브젝트 아트의 대가인 신디 셔먼의 작품이 간혹 봉준호 영화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한 것은 여전히 김기영과 봉준호의 연결고리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김기영 감독은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재조명되며 다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그 무렵 미국에 체류하던 필자도 UCLA의 김기영 감독 특별전에서 그의 수많은 걸작들을 만나고 경탄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당신들에게 히치콕이 있다면 우리에겐 김기영이 있고, 이건 절대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라는) 그러나 새로운 영화 준비를 시작하던 1998년, 김기영 감독은 불의의 자택 화재사고로 부인과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수공예처럼 정성스레 만들어내던 영화를 위해 쌓아둔 수많은 영화 소품들이 화재 사고를 키웠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사실 대로라면, 김기영 감독은 그야말로 영화를 위한,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가신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 20여년, 한국영화 100년이 되는 올해, 김기영 감독은 아마도 저세상에서 후계자 봉준호 감독의 칸느에서의 특별 언급에 소감을 남기실 듯하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 영상학부 영화전공 손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