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B급 감성의 성공 조건 - 드라마 <열혈사제>
[교수서평 - 영화전공 손태웅교수]
B급 감성의 성공 조건 - 드라마 <열혈사제>
2019년 2월 15일에 시작하여 4월 20일에 종영한 SBS 금토 40부작 드라마 <열혈사제>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나 예능 시간대에 처음 편성되게 된 드라마의 정체성에 대한 냉철한 판단으로, ‘병맛’에 가까운 B급 감성이 공중파 방송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열혈사제>의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살펴보자.
1. 이질적 요소로 새롭게 조합한 캐릭터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카톨릭 사제의 신분임에도 성질 더러운 독설가에 분노조절장애, 폭력적 성향을 보인다. 게다가 과거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라는 전력까지, 이전까지 감히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 조심스런 조합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너 때리래!”, “여기도 지옥행 셔틀버스를 탈 놈들이 많네?”라고 말할 수 있는 자, ‘사제’가 맞다.
“피닉썬”, 박경선(이하늬)은 검사이다. 우리가 흔히 가진 선입견처럼, 그 동네는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억압적, 수직적 조직이다. 그 선입견처럼 박경선도 폭탄주를 들이붓고, 다짜고짜 권력의 충견이 되겠다며 부장검사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다만, 박경선은 여성 캐릭터(빌러니스)이다. 그 한 가지 팩터가 새로운 조합을 충분히 완성시킨다.
그 외에도 가위바위보 대회 아시아챔피언, 보물찾기대회 전국 챔피언, 전국 피구대회 MVP 등의 경력을 가졌으나 결국 호구, 쪼다로 정의되는 ‘형사’ 구대영(김성균), 사람 머리만한 모카빵을 먹으면서 청력이 비상해지는 천문학도 편의점 알바 오요한(고규필)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극 초반 눈길을 붙잡아둔다.
2. 만화적 캐릭터 아크(변화)와 경쾌한 반전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던 박경선과 구대영이 김해일의 욕설 섞인 고난과 분투에 연루되며 각성하고 개과천선하는 수순도 극적인 동시에 자연스럽지만, 특히나 화제였던 캐릭터는 이주노동자 쏭삭(안창환)과 한성규(전성우) 신부, 김인경(백지원) 수녀이다. 한 때 ‘인권을 생각하는 피씨함(political correctness)’을 위해(?) 학생영화에 간혹 소외된 인물로 소환되어 왔던 이주노동자는 쏭삭에 와서야 비로소 캐릭터의 이름이 불리운 듯하다. 그는 과연 통쾌한 반전인 ‘왕을 지키는 호랑이’라는 자막 위로 유려하게 날아오른 무에타이 니킥으로 완성되었다.
아역배우 출신이라는 반전 정체를 악당들을 포섭하는 작전에 활용한 한성규 신부의 ‘엄마..’라는 대사 한마디가 눈물바다를 만드는 장면은 과장이고 말도 안되지만 괜찮다. 아무렴 어떠한가, 이미 우린 만화의 세계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그 세계의 하이라이트는 김인경 수녀가 ‘비광’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 ‘평택 십미호’로 변신하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도박판에 올라온 ‘잘린 손가락 모양의 USB’는 흥미로운 보너스이다.
‘발음연습’을 매개로 서로 매질을 주고받던 롱드 장룡(음문석)과 쏭삭의 오묘한 후반부 브로맨스는 롱드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애정에 힘입어 샘솟아 올랐고, 오요한은 액션 씬에 휘말렸다 두드려 맞으면서 행성의 궤적이 보이는 능력(또는 부작용)이 추가되며 나사 직원의 방문을 받는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다. 심지어 잔혹했던 악역 황철범(고준)까지도 가죽잠바로 변신하며 마지막 일원이 되어 호감형으로 잠시 탈바꿈한다.
3. 장르성과 시대성
김해일 신부의 벽치고 후려치기와 롱다리 돌려차기, 쏭삭의 공중부양 니킥, 구대영 형사의 에밀레종 박치기 모두 호쾌하고 그럴싸한 액션이다. 초능력이 아니면 어떠한가. 그들은 고담시의 다크한 배트맨이 아니라 구담시의 발랄한 어벤저스(구벤저스)로 탄생하여 ‘버닝썬’이 아니라 ‘라이징문’으로 쳐들어간다. 나쁜 놈들과 더 나쁜 경찰/고위공직자의 유착관계는 현실과 꼭 닮아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만큼, 드라마 안에서는 ‘응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이 시대의 (닮은꼴의) 대통령과 교황까지 등장시키는 과감함.
4. 재치와 통찰력 만렙의 예능식 자막과 대사
나영석PD로부터 예능 자막은 하나의 캐릭터이자 하나의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태국어로 쓴 ‘왕을 지키는 호랑이’, 전국 지도와 그림을 동반한 ‘평택 십미호’ 자막은 반전을 극대화시키고 신뢰도를 증가시키며, 완성체의 구벤저스가 출동하는 순간 갑작스런 ‘놈놈놈’ 스타일의 인물소개 자막들은 흥미로운 시선을 제공하고 몰입도를 높이며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또한 ‘타짜’, ‘범죄와의 전쟁’, ‘베테랑’ 등 여러 영화들에 대한 패러디도 종횡무진 날아다닌다.
“얘는 어떻게 전방 5m부터 때리고 싶냐?”, “사람은요, 공인인증서 4번 틀렸을 때만 신중해지면 안돼요. 매번 신중해야 돼.”라는 재치 있는 대사 뿐 아니라 “왜 여러분들은 성당에 와서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요? 자신들이 잘못한 사람들한테 가서 용서부터 받고 오세요.”, “사람이 준 기회로 통장은 채울 수 있어도 영혼을 채울 수는 없어요.”라는 통찰력 있고 주제적인 대사는 고심 끝에 심도를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열혈사제>의 이명우 감독은 극이 진행되며 작품 초반에는 진지함을 잡고 코미디를 섞었고, 1/3 지점에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미디를 기본으로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2/3 지점부터는 배우들의 현장 코믹감이 너무 좋아서 ‘풀로 베팅해보자’라고 결정했고, 이후는 애들립 배틀이 벌어질 정도로 풍성한 코믹 대잔치를 벌일 수 있었다. ‘병맛’은 자칫하면 ‘맛’은 없고 ‘병’만 남을 위험이 매우 크지만, <열혈사제>는 애매한 진지함보다는 적역의 배우가 적역의 캐릭터를 만나 한껏 뛰어놀며 ‘조금 더 많이 기발함’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주제를 더 효율적으로 내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한다.
- 영상학부 영화전공 손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