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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과 사유
장석남의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를 읽고 있으면,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좀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시집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이 느린 말투로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새로움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저처럼 확정된 의미를 지연시키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표현이 필요하다. 혹 새로움과 생각이라는 말 때문에 특별한 생각과 독특한 깨달음을 얻고자 시집을 열어보려는 이가 있다면, 그런 류의 목적은 장석남의 이 시집에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미리 알려야 할 것도 같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생각과 그것이 도달하는 결론 같은 건 장석남의 시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의 시에는 생각 속으로 또는 느낌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어떤 보폭(步幅) 같은 것이 있다. 흔히 리듬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것 말이다. 저 보폭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생각에도 리듬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리듬을 타는 사유야말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들까지도 사유의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석남 시의 리듬은 때로는 “곰곰이”나 “고요히 고요히”와 같은 부사 속에 그리고 또 때때로 ‘기다린다’는 술어 속에서 감지된다. 더 작은 것으로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가령 “ㄴ”이나 “ㅁ”등의 음성적 자질 속에도 리듬은 숨어 있다. 어떤 음가가 쓰였느냐에 따라 시의 말을 따라가는 우리의 걸음걸이와 호흡은 좀 더 빨라질 수도 있고, 또는 멈칫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다시 말해 장석남의 시집을 읽는 일은 우선 소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그 소리들이 부딪힘이 만들어 낸 긴장된 느낌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느낌의 파문이 그려내는 생각의 자장 안에서 길을 잃는 순간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 떨림의 과정 속에서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과 일상들은 조금 더 비밀스러워진다. 작품이 비밀스럽게 현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물은 구제될 가능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던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른다. 시의 소리들이 일종의 사유의 터가 발생시킨다고나 할까. 시인이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알아내기도 하고, 변기를 닦으며 자신의 윤리를 반성하게 되는 사건(「변기를 닦다」)을 경험하기도 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유의 터에 들어 앉아 시인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한다. 더욱이 흥미롭게도 그것들은 그가 일부러 찾아 낸 생각들이라기보다는 그를 찾아 온 생각들로 보인다. 유독 “온다”와 “기다린다” 류의 서술어가 시에 많이 사용된 사실도 실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시인이 소리들을 그러모으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유의 터에는 시간의 소용돌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다가오고 또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자주 미래가 아니라 과거 쪽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아니 과거이자 미래인 시간의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도 같다. 소리의 미세한 결속으로 침잠해가는 시인의 태도는 단순히 대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기보다 어떤 존재미학을 세우려는 행위처럼 보인다. 달리 말하자면, 장석남의 시작(詩作)행위는 교환가치에 매몰되어 질식해 가고 있는 사물들의 질적 가치를 회복시킨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떠올려보자. 하나하나가 모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뽐내며 아련하고도 애틋하기만 하다. 또한 장석남 시의 언어들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며 그것을 유통시키려는 언어와 한참은 멀리 떨어져 있다. 단일한 메시지를 초과하거나 그것에 균열을 내는 언어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거나 그것의 전파수단이 되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러하기에 더욱 독자들은 장석남의 시 앞에서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소리의 미세한 결이 열어놓은 사유의 터에 참여하여 수많은 생각과 느낌에 사로잡히는 대신에, 시를 의미의 전달 대상으로 삼아 거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해석하려는 순간 장석남의 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그렇게 미세한 차이들이 살아서 숨을 쉰다. 수월한 관리를 위해 획일화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저 차이의 숨결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허허롭고 광활한 느낌의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울리는 이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는 우리에게 당신만의 사유의 리듬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