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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고흐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고흐의 편지

등록일 2018.09.25 / 작성자 정*준 / 조회수 168  

우린 고흐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고흐의 편지
 

 

고흐. 그의 삶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에 대한 믿음과 예술의 열망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다 완전히 예술의 길 즉 화가의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고 끔찍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가족들의 미움과 천대 속에 살면서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히 먹고 살았다.  또한 그는 불행한 연애를 이어갔는데, 과부가 된 친척을 사랑했으며(하물며 그녀에게는 거절 당함) 남편에게 버림받은 임산부를 사랑해서 그녀를 돌보고 그녀의 아이까지 키운다. 그러면서도 예술가의 긍지와 자존심은 강해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온갖 고민을 털어놓다가도 말미엔 아쉬운 소리를 하며 금전적인 도움을 갈구한다. 그러다 결국 그는 젊은 나이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그가 스스로 자신을 표현했던 것처럼 ‘더러운 털복숭이 개’처럼 살다가 죽었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관계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걸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흐의 편지에서 '소울메이트' 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정신적인 이해와 정서적 교감을 읽어낼 수 없었다. 어쩌면 고흐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그가 너무 가엾고 딱한 나머지 생각해낸 그러니까 불행한 예술가가 마음의 피난처와 마음을 쏟아낼 단 한 명의 사람(독자, 친구, 팬)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어 억지로 만들어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밑줄 그은 몇 문장을 읽어보자.

 

그래, 넌 무엇을 원하니? 밖에서 벌어지는 것을 봄으로써 내면에서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니? 내 영혼 속에 거대한 불이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도 그것으로 자신을 덥힐 수는 없고, 지나가는 사람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나 보면서 그냥 지나칠 뿐이잖아.


내 길을 계속 가야 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공부도 탐구도 더는 하지 않으면 나는 실패하겠지. 그럼 불행해지겠지.


목회자들은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지. 죄를 짓고 태어났다고. 이런! 이게 무슨 착잡한 헛소리인지 모르겠어. 사랑하는 것이 죄야? 


네가 지원을 끊는다면, 나는 힘이 빠지고 말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의지에 넘치던 내 손은 마비될 것이고, 모든 것은 끔찍해지겠지.


나는 이마에 흠집도 나고 얼굴에 잔주름도 잡힌 서른 살 사내야. 그런데도 사십대로 보이고, 손에는 깊은 주름만 가득해.


그저 판매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면 훗날 괴로울거야.


나는 아버지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어. 나는 개가 되고 있고, 미래에도 필경 더 추하고 거칠 거라는 느낌이 들어. 내 운명이라야 뭐 ‘가난뱅이’가 되는 거겠지. 그렇더라도, 인간이든 개이든, 나는 화가가 될 거야. 요컨대 감정이 있는 인간이.


테오야, 내게 25훌덴밖에 남지 않았는데, 조금 더 보낼 방법이 없겠니? 물론 불가능할텐데.

 

그렇다면 테오는 어떻게 답장했을까? 


형이 견딜 수 없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 고장에서 평생을 살았고 현대적인 생활에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들과 형의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다 당연해. 그래도 어쩌다가 형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생활을 비난할 만큼, 그렇게 창피하게 어린애처럼 굴고, 일을 수습하기 불가능할 지경이 되게 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형을 이해하지 못해.

 


이 책을 다 읽고 고흐라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 생겼다. 그는 너무 불후했고 불쌍했다. 물론, 그의 삶은 지금의 관점에서 조명해볼 때는 위대한 예술가의 삶이었지만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자기 자신이라면 얼마나 슬픈가. 사후명성? 그게 도대체 뭐라고.

 

그러나 나는 고흐가 좋다. 매 순간 솔직해줘서. 세상이 무시해도 자존감만큼은 흔들리지 않아서.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화가로 살아줘서. 절망과 비참을 이토록 명징한 언어로 표현 해줘서. 그래서 읽게 해줘서. 고맙고 다행이고 멋지다. 

 

여담으로 영드 <닥터 후>의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닥터는 과거의 실존인물 고흐를 현대로 데려와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보여준다. 고흐는 당황하고 놀란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자신의 그림이 미술관 사방에 걸려 있고 그걸 수많은 사람들이 경탄의 눈으로 관람하고 있다. 그리고 듣게 되는 도슨트의 극찬. 

 

“그는 세계 최고의 예술가일 뿐 아니라 이 세상 최고였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고흐는 운다. 아이처럼 엉엉 운다.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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