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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서 듣는 창작의 비밀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젊은 시인 12인이 털어놓는 창작의 비밀
-서랍의 날씨 출판, 김승일 외, 2018. (전자책)
늘 그렇듯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요구하는 문서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당선소감이나 합격소감 등의 자전적인 글이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젊은 시인들의 생각을 들어 본다.
시인을 업으로 갖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서 시의 정의를 듣는다. 모두 시를 쓰려고 한 마음은 공통적이다. 업으로 생각할 때 시를 못 쓰겠다 하고, 시를 의식하지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감정에 맡길 때 시가 써진다고 한다. 시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삶, 살아가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본래적 성격이지 않을까 싶다.
이승우 시인의 생각처럼 시는 집착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할 때 저절로 읊조리는 리듬이다. 그것은 오규원 시인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 김현 시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있었을까? 다른 시인들의 삶에서도 알 수 있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얼마나 소중하게, 얼마나 의미 있게 기억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에도 초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대단히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단서가 된다.
습작을 하고 습작품을 내어 보이기까지 숨겨둔 진실이 드러나도 개의치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자신감에 의지한다. 살아 보니 이렇더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글을 지을 명분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
박성준 시인처럼 시쓰기의 고통을 누구나 알 것이다. 살아보려고 살아내려고 애쓰는 고통이 바로 시쓰기인 것이지, 그냥 쉽게 씌어진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시는 그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만나게 된다. 창작의 어려움을 모르고서 창조하려 덤비는 초보자는 삶을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얼마나 진실하고 치열하게 살았는지에 따라 문학성이 드러날 테니까.
한편 박준 시인의 연애가 영감을 부르듯, 안희연 시인처럼 날로 시쓰기를 두려워할 수 있겠다. 자신감 있게 기세등등하여 달려나가도 안 될 때가 있고, 너무 조심스러워해도 안 될 때가 있다. 때를 알고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나 서둘러서 기회를 놓치는 수도 많으니까.
어쨌든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떻게 맞출까 고민하지 않아도 올 것은 오는가 보다. 시인들은 자신이 쓰고 싶을 때 자신을 위해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말이 어떤 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책임감을 느낀다. 자기만족에서 글을 쓴다면 굳이 책을 낼 이유가 없으니까. 글을 쓰고 나서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유계영 시긴은 단어 하나라도 자신만의 개념으로 정의하려 애썼다. 남도 생각하는 정의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의미를 정의해내려 곱씹고 곱씹었다고 한다. 남다른 특별한 삶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을수록 시의 본질을 알게 되는 거다. 내가 누군지를 잘 아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는 것. 다만 그 결과를 언어로 표현할 때 비로소 시가 된다.
시인은 전문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고 난 끝에 탁 치고 나오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울할 때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우울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기쁘고 행복할 때 생각에 잠기거나 멍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정작 행복해져 있을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우성 시인은 시를 쓸 수 있어야 비로소 솔직해진다고 하면서, 낮보다 밤에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정직한 때는 엄숙하고 조용한 환경이라는 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황인찬 시인의 생각도 그러하듯이, “시는 인식의 결과가 아니라 소망의 산출”일까?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세계여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지만 딱히 물을 대상이 없다. 자신의 인생을 누가 알겠으랴. 자문자답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밤일 뿐.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있으면서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때라야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니까. 시 쓰기는 삶이 진실하고 견고할수록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쉬운 일이다. 사색적인 사람에게 시는 어울리며, 늘 즐거워하고 어울려 사는 이들을 ‘시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