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검색
본문
모더니즘을 넘어선 다원주의적 현대예술에 대한 미학적 비평 논의, 『예술의 종말 이후』
모더니즘을 넘어선 다원주의적 현대예술에 대한 미학적 비평 논의,
『예술의 종말 이후』
1.
책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예술의 종말’(The End of Art)이라니! 아니,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란다! 다시 말해, 예술은 끝났으며 그 이후에 대해 작심하고 한 마디 하겠단다.
저자가 누구 길래 이렇게 강한 어조로 나서고 있는 걸까? 이 책의 저자 단토(Arthur Coleman Danto, 1924~2013)는 대학에서 예술과 역사를 공부한 뒤, 다시 대학을 옮겨 철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에서도 철학을 수학한 인물이다. 그리고 195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핵심 전공을 살려 철학과 교수(컬럼비아대학)를 지냈으며 미국 철학회 회장 및 미국 미학회 회장을 역임한 예술과 철학을 넘나드는 흔치 않은 학문적 이력을 소유한 학자이다. 특히 미국의 학계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유럽의 철학에 기대어, 동시대 미술로부터 괴리되어 왔다는 비판을 받는 미국 미학의 전개과정 속에서 과도하게 추상화되어버린 형식주의 예술비평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동시대 예술의 철학적 성질에 주목하면서 예술의 실천적 활동에 대한 접근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시도한 미학자이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의 죽음’이나 ‘회화예술의 종언’에 대한 주장은 70년대 말부터 종종 있어 왔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 1935~ )은 『미술사의 종언』(Das Ende der Kunstgeschichte, Munich, 1984 / The End of the History of Art?, translated by C.S. Woo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에서 기존의 보편적이며 통합적인 개념을 추구해 온 미술사학의 위기적 상황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미술사의 정태적인 개념으로부터의 개방과 새로운 미술사 방법의 수립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단토의 경우, 당시 미국 학계의 주류였던 분석철학으로부터 헤겔적인 역사주의로 전회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논의를 미술사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철학과 예술에 대한 변증법적인 사고를 통해 ‘예술의 종말’과 ‘그 너머의 지평’까지를 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이 여느 ‘예술의 종언론자’와는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인 아서 단토는 그간의 미국 미술비평계를 주도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모더니즘 예술관 및 형식주의 미술비평관을 요목조목 따져가며 비판한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이 대두되어 풍미하고 있는 60년대 앤디 워홀의 팝 아트로부터 80년대 설치미술 및 차용미술 등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과 이 신종 예술의 개념에서 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90년대 당대의 예술(contemporary art)에 대해 다원주의(pluralism) 입장에서 다종다양한 현대의 미술을 『예술의 종말 이후-컨템퍼러리 예술과 역사의 울타리』(After the End of Art-Contemporary Art and the Pole of History, 1997 / 이성훈ㆍ김광우 역, 『예술의 종말 이후,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미술문화, 2004)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으로 옹호하고 나선다. 특이한 점은 그가 『예술의 종말 이후』의 큰 프레임을 헤겔로부터 뽑아낸 점이다. 즉 헤겔의 『정신현상학』(1807)에서 설명한 역사 모델 ― 정신이 자기인식을 통해 절대정신으로 향해 전개해 가는 과정을 세계역사로 보는 ―을 예술사의 전개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단토는 예술의 역사도 정신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의식화해가는 과정임을 주장하며 그 과정은 예술이 철학으로 지양됨으로써 종말을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예술의 종말’은 단순한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예술의 탈-역사적(post-historical) 시대에 들어서면서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이 걸어 온 배타적인 예술사의 에피소드, 즉 선언문의 시대로서 특정한 종류의 운동과 특정한 종류의 양식만을 확정해서 이것만이 유일하고 중요한 예술이라고 간주하며 그 경계 밖 예술들을 모조리 제거한 예술의 이데올로기 시기의 예술 멸망을 지적한다. 예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독해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판 서문 '예술의 종말과 미래' 1장 들어가는 말 : 모던, 포스트모던, 그리고 컨템퍼러리 2장 예술의 종말 이후 30년 3장 거대서사 그리고 비평의 원리들 4장 모더니즘과 순수미술의 비판: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역사적 비전 5장 미학에서 미술비평으로 6장 회화와 역사의 울타리 : 순수의 경과 7장 팝아트와 지나간 미래 8장 회화, 정치, 그리고 탈 역사적 미술 9장 모노크롬 미술의 역사적 미술관 10장 미술관과 갈망하는 수백만의 군중들 11장 역사의 양상들 : 가능성과 희극 역자 해설 : - 단토의 예술철학 혹은 철학적 미술사 - 이성훈 -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에 관하여 - 김광우 |
2.
다음은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단토가 논의하고 있는 약간의 난해한 내용과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비판 및 동시대 예술에 대한 미학적 주장에 대해 독자를 위해 서평자가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참고하길 바란다.
-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의 예술
■ 그린버그식 모더니즘 예술론에 대한 단토의 비판
ㆍ인상주의 미술을 모더니즘의 출발로 보는 견해에 대한 비판 : “인상주의 캔버스는 전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그것은 그것이 전적으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인상주의는 바자리적 의제의 지속이다. 즉 인상주의는 빛과 그림자 사이의 자연적인 차이들을 갖고서 시각적 외관을 정복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A. 단토, 이성훈ㆍ김광우 역, 『예술의 종말이후』, 미술문화, 2004, p.127)라고 보아, 그린버그와는 달리 인상주의를 모더니즘 미술이 아닌 시각적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모더니즘 미술 이전’의 미술로 보고 있다.
ㆍ모더니즘 미술의 순수성에 대한 비판 : “모더니즘 문화가 끝나게 되는 것은 형태, 표면, 물감 등과 같이 회화를 그 순수성 속에서 정의 내려 주는 것들에만 관심을 쏟은 모더니즘이 너무 국지적이고 너무 물질주의적이었기 때문”(p.61)이라고 비판한 후, 그린버그의 미술사의 내러티브에는 아카데미화와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가 ‘역사적 경계 밖’으로 내 몰렸다고 비판한다(p.50). 더욱이 “그린버그주의적 잣대를 들이댈 때 컨템퍼러리 미술은 모두 다 순수하지 않은 것”(p.52)으로 몰려 현대미술의 장에서 제거되는 논리를 안고 있다고 본다.
ㆍ추상표현주의 이후의 그린버그식 미술사 전개에 대한 비판 : 단토는 그린버그가 모더니즘 미술사를 색면추상에서 멈춰 버린 점을 지적한 후(p.50), 그것은 “배타적인 역사적 내러티브”(p.281)라고 공격하면서, “그린버그가 깨달았던, 예술작품은 한갓된 실제 사물 사이의 딜레마가 더 이상 시각적인 용어로는 언명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물질주의적 미학을 벗어나 의미의 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역사적 명령이 되었을 때, 모더니즘이 종말을 도달하였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팝아트의 도래와 함께 일어났다”(pp.162~163)고 하여, 1992년 여름 뉴욕에서 그린버그가 한 소집단을 상대로 한 강연 내용, 즉 “미술의 역사상 아마도 미술이 이렇게 천천히 움직였던 적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p.207)는 그린버그의 언급을 강조하면서, 단토는 그린버그가 언급한 30년 동안 팝아트를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린버그식의 비평의 순수주의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 서양미술의 거대 서사와 미술의 종말 이후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 | 모더니즘 미술 |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컨템퍼러리 미술) |
회화의 모방적 특질 | 회화의 비모방적 특질 | 미술의 철학화 특질 |
조토(Giotto, 1267~1337) 이후의 근대미술 | 1880년경~1960년대 어느 때까지 | 1970년대 중반부터 미술이 모종의 거대 내러티브 속에 위치해 있었던 시대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에 발생한 미술 |
미술사의 거대 서사 이행 → | 탈-역사적(post-historical) | |
재현적 특징이 일차적 요소 | 재현적 특징은 부차적인 요소 | |
재현주의와 미술을 동일시 | 회화의 경우, 자신의 물질적 매체인 물감과 캔버스와 표면과 형상과 동일시 | |
발전, 진보 개념의 적용 | 발전, 진보 개념의 적용 | 평등 개념의 적용 |
시각예술의 전통적 패러다임으로서 모방 패러다임 | 모방 패러다임의 존재는 인정, 그러나 자신들의 강령으로 삼지는 않음 | |
ㆍ예술작품 자체에 대한 지대한 시각적 관심 ㆍ환영주의 | ㆍ시각성은 미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 ㆍ다원주의 | |
르네상스 미술 ~ | 인상주의 ~ 추상표현주의 | 1962년 <브릴로 상자>에 의해 미술사의 종말 맞이 |
| | 어떤 진지한 예술철학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부상 |
| | 예술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해야 하는 것 |
| |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에 관해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 |
| ㆍ선언문 시대 특정한 종류의 운동과 특정한 종류의 양식만을 확정해서 이것만이 유일하고 중요한 예술이라고 간주, 경계 밖 미술들을 모조리 제거 | 예술의 종말 이후 = 미술의 철학적 자기반성으로의 상승 이후 |
| |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철학적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 미술사의 내적 의도 |
| ㆍ역사의 짐을 예술가들이 스스로 짊어짐 ㆍ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이 예술의 철학적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 분투노력하던 시기 | 역사의 짐을 철학자들에게 넘겨줘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예술이 가능 → 철학과 예술의 분리 → 예술자체의 철학화 |
재현의 단계 | 모더니즘 단계 자기-순수성 성취의 단계 | 철학적 단계 미술의 자기 이해 단계 |
모방의 시대 (미술의 前-이데올로기 시대) | 미술의 이데올로기 시대 | 탈-역사적 시대 |
비평의 원리 | ||
바사리(G. Vasari, 1511~74) | 그린버그 (C. Greenberg, 1909~94) | 단토(A. Danto, 1924~2013) |
․시각적 진실에 기초 ․모방만이 예술로 취급 | ㆍ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관념 제시 ㆍ몇 가지 예술이었으되 제각기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해 동분서주 | ㆍ다원주의적 관점 ㆍ예술작품이 되기 위한 특별한 방식 같은 것은 존재 하지 않음 |
바자리의 에피소드 | 그린버그의 에피소드 | 탈 내러티브의 시대 단토의 에피소드 |
| 배타적인 에피소드 | |
예술 이전의 시대 | 예술의 시대 | 예술의 종말 이후 시대 |
- 현대 예술비평에 관한 그린버그와 단토의 관점 차이
그린버그(1909~1994) | 단토(1924~2013) |
잭슨 폴록, 추상표현주의 옹호 | 앤디 워홀, 팝아트 옹호 |
칸트 철학에 기반 | 헤겔 철학에 기반 |
순수성 : 미술의 매체의 본성 속에 유일무이하게 들어 있는 모든 것 | 역사 밖 경계 : 울타리를 치지 않는 경계 밖의 가능한 모든 미술 |
미국식 회화에 한정 | 미국식 팝아트에 한정 |
마네로부터 모더니즘 미술이 출발 | 고흐와 고갱으로부터 모더니즘 미술이 출발 |
‘물질주의적 미학’ 추구 (물질주의) | 존재의 미학으로 나아가는 ‘의미의 미학’ 추구 (본질주의) |
포스트모더니즘 | |
물질주의적인 미술사에서의 일시적인 일탈로 간주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의 시작으로 간주 |
물질주의적 미술사의 후속 에피소드 | |
후기-회화적 추상 (post-painterly abstraction) | 다원주의적 미술 (plural art) |
미국식 미술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한계를 드러냄 |
- 워홀의 《브릴로 상자》(1962)에 대한 단토의 견해
①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일반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브릴로 상자와 시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indiscernible)하다. 이러한 사실은, 예술(미술)의 본질은 시지각적인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시지각적인 성질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때의 예술은 ‘경험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사유의 영역’에 있게 된다.
③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일반 사물과의 식별 불가능한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무엇이든 다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워홀은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것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브릴로 상자》는 예술이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진보하지 않으며, 예술의 역사는 더 이상 진보적인 내러티브로 진행될 수 없음을 현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으며 모두 11장을 구성하고 있는 『예술의 종말 이후』는 배려 깊은 원저자 단토 선생이 새로 작성한 한국어판 서문과 공동역자 각자의 전문성을 갖춘 역자해설 2편이 마치 별책 부록처럼 현대예술이론서를 접하는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 책의 앞과 뒤를 장식하고 있다. 한국어판 편집의 이와 같은 친절함에 이 책의 독해가 좀 더 수월했다고 생각되는 예대인 독자가 있다면, 단토의 또 다른 저작 『일상적인 것의 변용』(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1981 / 김혜련 역, 한길사, 2008)의 독해에도 한 번 도전해 보아,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는 듣지 못한 동일 저자의 다른 각도에서의 다원주의적 미학 담론을 접해봄으로써, 예술창작에 전념하는 여러분의 아이디어 샘이 두 배 자극받길 기대해 본다.
이 승 건
예술창작기초학부 교수ㆍ미학
